내가 본 영화

[영화리뷰] Undo / 이와이 슌지

김왕수 2024. 11. 27. 07:35

undo 포스터

내가 본 영화.13

[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몰아보기]

제목 : Undo(원제 : Undo)
감독 : 이와이 슌지
출연 : 토요카와 에츠시, 야마구치 토모코
상영시간 : 47분
분야 : 드라마
국가 : 일본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 1994년

관림일 : 2024.11.01

이와이 슌지 감독의 <undo>를 보았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몇 달 간 몰아봤으니 이번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홍콩에 왕가위 감독이 있다면 일본엔 이와이 슌지 감독이 있다, 둘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당시 중경삼림과 함께 러브레터의 인기는 대단했었습니다. 티비에 '오갱끼데쓰까' 하는 일본말이 자주 나왔고 패러디도 많이 되었습니다. 러브레터는 아마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외하면 국내 개봉한 일본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거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 왕가위 감독과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인기는 엄청났고 하나의 현상,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허무하고 불안한 청춘들의 모습을 영화속에 많이 담아냈습니다.

<undo>는 1994년 작품으로 이와이 슌지의 데뷔작입니다. 러브레터로 이와이 슌지를 접한 사람들이면 아마 깜짝 놀랄겁니다. '이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든다고?'하며 놀랄겁니다. 같은 감독이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길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블랙 이와이', '화이트 이와이'로 나눠서 보는 구분법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들이 '어 이거 이와이 슌지 영화 같다'고 느낄만큼 특유의 느낌이 있습니다.

<undo>는 '블랙이와이' 쪽의 시작점이 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습니다. 뭔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약간의 불쾌한 감정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기, 제대로 묶어줘

거북이

영화는 주인공인 유키오(토요카와 에츠시)가 박스를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박스 안에는 거북이 두마리가 들어있습니다. 애인인 모에미(야마구치 토모코)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사실 모에미는 개를 키우고 싶었습니다만 아파트는 개를 키우는게 금지되어있죠. 그래서 유키오가 차선책으로 모에미에게 선물한 게 거북이 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충격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유키오는 드릴로 거북이의 등껍질을 뚫고 쇠사슬을 채웁니다. 그리고는 이제 개처럼 산책시킬 수 있다고 말하죠. 그리고는 둘은 거북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갑니다. 거북이를 때리고 줄을 들어올려 버둥거리는 모습의 거북이를 보여주고, 거북이를 물에 담갔다가 뺍니다. 흡사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행동을 합니다. 거북이는 계속해서 버둥거릴 뿐입니다.

영화에서는 '묶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북이에게 목줄을 채우듯이 등껍질을 뚫고 묶는 것. 그 행동을 함에 있어서 유키오는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상대방을 묶어둠에 있어서 고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죠. 그저 아무 감정없이 단단한 등껍질을 뚫어버립니다. 유키오의 그런 무감정함은 상대방인 모에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묶여있는 상대방은 물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답답합니다. 그저 살기위해 버둥거릴 뿐이죠. 어쩌면 개를 키우고 싶다고 한 것도 유키오의 감정 없는 모습에 외로움을 느낀게 아닐까요

교정기

모에미는 자신을 묶고있던 도구인 교정기를 뺍니다. 오랜시간 교정기를 하고있다가 제거를 했는데 얼마나 개운하겠어요. 묘한 해방감도 들겠죠. 교정기를 뺀 모습을 당장에 자랑하고 싶은 감정도 있을겁니다. 그래서 모에미는 유키오에게 잔뜩 기대하며 갔습니다. 둘은 키스를 하는데 유키오는 뭔가 뜨뜨미지근하죠. 교정기가 없는 치아가 익숙하지가 않은거에요. 전에 있던 쇠맛이 안난다며 약간 실망하는 듯한 뉘앙스도 풍깁니다. 자신은 굉장히 들떠 있는데 상대방이 그런 찬물을 끼얻는 듯한 말을 하면 기분이 당연히 어떻겠어요? 모에미는 실망합니다. 교정기를 다시 착용한다는 말도 하죠. 자신을 묶고 있던 것에서 해방되니 오히려 사랑은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겁니다. 그래서 다시 스스로를 묶게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죠.

이즈음에 마침 유키오는 바빠집니다. 모에미가 일요일에 어디라도 가자고 하지만 바쁘기때문에 못놀러간다고 하죠. 유키오는 대답도 건성으로 합니다. 유키오가 원래부터 그랬던 사람인지 아니면 사랑이 식어서 그랬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모에미의 마음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거품과 뜨개질

영화는 모에미가 거품을 손에 쥐고 실로 감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클로즈업 해서 보여줍니다. 거품은 실로 묶는다고 묶일 수가 없는 물체죠. 묶일수 없는 것을 묶으려는 시도 자체가 바람을 손으로 잡으려는 것과 동일한 것이고 목적을 이룰 수가 없는, 시도하는 사람에게 절망감을 한겨주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모에미의 이상행동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집안의 모든 것을 다 묶어놓기 시작합니다. 손과 사과를 함께 묶는다던지, 거북이를 칭칭 감아논다던지 유키오의 책들을 다 묶어놓죠. 모에미는 유키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뜨개질을 합니다. 뜨개질은 두개의 실을 잘 연결해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에미에게 사랑은 뜨개질과 같은 것입니다. 같은 질감의 두 실이 묶여서 완성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완성품이 되려면 얼마나 많이 엮여야 할까요. 모에미는 뜨개질을 하며 유키오에게 말을 걸지만 유키오는 역시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이러한 유키오의 행동은 뜨개질의 두 실중의 한쪽이 엮임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한쪽은 묶인것을 풀고있는 것이죠. 영화에서 유키오는 실제로 책에 칭칭 감겨진 실을 가위로 잘라냅니다. 묶인 실들이 모에미가 갈구하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유키오는 무심하게 그것을 잘라낼 뿐입니다. 마음이 변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식었던 그렇지 않던간에 유키오의 행동은 모에미가 느끼기에는 묶였던 실을 풀어내는 행동으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모에미는 아마 유키오에대해 느끼는 감정이 거품을 실로 묶는 것처럼 헛된 것이라고 느꼈나 봅니다. 흔히 사랑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할 수있는 선택지는 두가지 뿐입니다. 떠나가거나 집착하거나. 모에미는 거품처럼 사라지는 유키오의 사랑을 실로 계속 감는 후자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강박성 긴박 증후군......일종의 사랑병

시계의 종이 칩니다. 종이 울린다는 것은 '시작과 끝'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모에미의 집착의 증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유키오와의 관계가 끝이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까 생각듭니다. 둘은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받고 이름도 어려운 '강박성 긴박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일종의 사랑병이라고 진단을 내리죠. 그리고 영화의 최고의 장면이 나오죠. 둘은 병원을 나오며 언덕을 걷는데 모에미는 의사가 돌팔이라고 하며 유키오에게 키스를 합니다. 이때 모에미와 유키오의 모습이 너무 대비됩니다. 모에미는 계속해서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상대방을 옭아매듣이 열정적인 반면에 유키오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마음을 정리하고 있기도 한 상태인 것 같은데, 뻣뻣하게 서서서 키스를 받기만 하고 있죠. 그리고는 뒤에 보이는 배경에 거미줄 처럼 늘어져 있는 전선줄이 보이고 둘 사이를 지나가는 초등학생 무리들의 등의 멜빵의 모습이 실이 얽혀있는 모양으로 비춰집니다.

이 후 모에미는 집안의 모든 것을 묶어놓는 지경까지 옵니다.

"기다림을 묶고 있었어"

의사는 다시 찾아온 유키오에게 생활 중 묶어두는 원인이 있다. 그것은 유키오가 느끼기엔 사소한 것이어서 느끼지 못할수도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녀를 오히려 묶어보라는 조인을 해줍니다. 유키오는 여전히 원인을 모릅니다. 오히려 우리는 풀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키오에게 사랑을 푸는것이었나 봅니다. 사랑할 수록, 익숙해 질 수록 느슨해지는 편한관계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모에미의 광기는 절정에 달합니다. 우리들의 사랑을 묶었다고 하면서 사진속의 눈과 입과 얼굴들을 붉은 실로 꿰매놨는데 공포영화 같습니다. 그리고 모에미는 교정기를 다시 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키오는 충격을 받죠. 저런 모습에 충격을 안받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유키오는 의사의 조언대로 모에미를 묶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묶고 어떤가 상태를 살피는 유키오에게 모에미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좀 제대로 묶어달라고 하죠. 유키오는 계속 묶습니다. 땀나며 열심히 묶죠. 그래도 모에미는 계속 제대로 묶어달라고 합니다. 유키오는 실성한 듯이 묶죠. 모에미는 계속해서 유키오에게 사랑을 갈구합니다. 제대로 묶어달라는 것은 육체를 구속해 달라는게 아니고 사랑을 달라는 것인데 유키오는 그저 화가난다는 듯이 모에미를 묶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음날 깨어났을 때 칭칭 묶어놨던 모에미는 사라집니다. 유키오가 묶어논 실은 쉽게 풀릴만큼 얽매이지 못했나 봅니다. 유키오는 영화의 제목 'undo'처럼 종국에는 모에미와의 관계를 망쳐버렸습니다. 유키오는 모에미와의 관계에서 묶인 것을 풀었고 그로인해 악화된 상황을 원상태로 돌리려고 시도하다가 종국에는 망쳐버린 것입니다.

마치며

영화는 '사랑'를 '묶임'으로 표현해서 사랑하는 사람간에 느끼는 사랑의 정도를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이 슌지 영화답게 영화에 들어간 ost 'Your Kiss'도 좋습니다. 슬픈 느낌도 있고 공포적인 느낌도 있고 찝찝한 느낌도 있습니다.

현재 <undo>는 볼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소장하고 있는 dvd나 도서관의 자료로 찾아봐야 합니다.

 

눈을 떠보니 나는 칭칭 얽어매어져 있었고 모에미의 모습은 없었다.

결국 우리들은 묶여 있었던 것일까? 풀고 있었던 것일까?

모에미는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