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영화.12
[내친김에 왕가위 감독 영화 몰아보기]
제목 : 2046(원제 : 2046)
감독 : 왕가위
출연 : 양조위, 기무라타쿠야, 장쯔이, 왕페이, 유가령, 공리 등
상영시간 : 128분
분야 : 드라마
국가 : 홍콩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 2004.10.15
관림일 : 2024.10.26
왕가위 감독의 <2046>을 보았습니다.
2046은 왕가위 감독 영화중에 유일하게 sf설정이 들어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cg도 나옵니다. 가상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전의 왕가위 감독 작품을 못본 사람이라면 제대로 즐기기 어렵습니다. 우선 전작인<아비정전>, <화양연화>와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여러 영화에 대한 오마주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연이지만 다행스럽게도 2046을 마지막으로 보게되니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조금은 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큰 줄기는 <화양연화>의 뒷 내용이니 적어도 <화양연화>를 감상하고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는 기무라 타쿠야 배우도 출연합니다. 양조위 배우도 인기가 많았지만 기무라 타쿠야의 인기는 정말 어마어마 했었습니다. 잘생긴 사람이 노래도 하는데 연기까지 잘합니다...
추억은 항상 눈물을 부른다
2046의 첫 장면은 소설 속의 내용인 2046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열차 2046은 미래의 광역철도망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게 목적인 영원히 운행하는 열차입니다. 아무도 하차한 사람이 없는데 유일하게 한 일본인 남자(기무라 타쿠야)만이 2046에서 떠나옵니다. 독특한 질감의 조형물의 구멍에 화양연화처럼 무언가를 속삭입니다. 아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비밀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주모운은 사랑에 실패하고 일도 잘 안되어서 신문에 칼럼을 기재하면서 근근이 먹고사는 것 같습니다. 곧 사라질 순간의 쾌락에 의존하는 모습입니다. 도박에 빠져있고 바람둥이가 되어있습니다. 그가 있는 곳은 고향도 아닌 타지입니다. 정착할 수 없는 그의 마음은 <아비정전>의 '아비'와도 같아 보입니다. 정착하지 못하는 허무함. 그 허무함에서 오는 고독함이 있습니다.
객실 번호 2046은 그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화양연화>에서 그와 소려진이 함께 소설을 쓰며 사랑을 나누었던 공간이 2046이었죠. 그런데 2046 객실은 이용하지 못합니다. 바로 그 객실에서 아비정전의 '루루'가 연인에게 살해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루루의 연인은 클럽의 드러머였고 주모운과 루루가 만나는 걸 봤나 봅니다. 루루는 주모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주모운은 예전에 댄서로서 일하는 루루의 모습을 봤다면서 반가워하죠. 루루는 이곳에서는 미미라고 하며 과거의 기억은 잊은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죽은 애인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아마 아비(장국영)겠죠. 실제로 영화가 장국영이 죽은 이후에 개봉을 했으니 당시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굉장히 씁쓸하고 아련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루루와 주모운은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고 술에 취한 루루를 주모운이 숙소에 데려다주게 됩니다. 그곳에서 침대 위에 누워있는 루루의 신발을 벗겨줍니다. 이 장면은 영화 <중경삼림>에서 밤거리를 거닐다가 객실로 들어간 하지무(금성무)가 금발의 여인(임청하)의 신발을 벗겨주는 모습이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주모운이 떠나간 곳에서 루루는 홀로 눈물을 흘립니다. 루루는 정말 기억을 잃었던 걸까요? 아니면 아픈 사랑의 추억을 잊기 위해 미미로 살았던 것일까요? 루루는 <아비정전>에서 질투심과 소유욕이 강한 인물이었는데 <2046>에서 상대방 연인의 질투심 때문에 살해당하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어찌 되었건 이러한 모종의 이유로 그는 객실 2047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뒤이어 2046에 들어온 여자(장쯔이)와 만남을 가지게 되죠. 작업을 거는 게 완전히 선수입니다. 아비가 자신을 상대방에게 각인시키는 바람둥이였다면 주모운은 스며들게 하는 바람둥이인 것 같습니다. 주모운은 그녀와 만나고 관계를 가지면서도 마음을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거울을 보며 빗질을 하는데 아비정전에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양조위의 모습과 같습니다. 주모운은 늘 그녀를 만날 때마다 돈을 주고 그녀는 자존심을 상해하면서도 그 돈을 받습니다. 둘이 술을 마시러 택시를 타고 가는 모습은 화양연화의 구도와 똑같습니다. 주모운에게 사랑에 빠진 그녀는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주모운의 표정은 굳어지죠. 한번 사랑에 깊게 상처가 났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다시 깊은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주모운은 안된다며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그러고는 화가 난 그녀는 이 관계의 종료를 선언하죠. 아비정전의 아비와 소려진(장만옥) 같습니다. 나만은 특별하게 대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호텔 사장의 딸(왕페이)와 일본인 남자(기무라타쿠야)의 사랑은 호텔 사장의 반대로 끝이 납니다. 사장 딸이 공허한 표정으로 담배를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도 <해피투게더>에서 양조위가 공허한 표정으로 밥을 천천히 먹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 둘에게서 영감을 받아 주모운은 소설 2046을 집필합니다.
주모운은 도박판에서 검은 거미라고 불리는 여자. 자신이 사랑했던 소려진과 동명이인의 여자(공리)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홍콩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하지만 소려진은 거부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모른다는 것이 동행을 거부한 이유입니다. 아마 주모운은 평생 그녀의 과거를 모르겠죠. 그녀는 아마 주모운이 자신을 통해 과거의 소려진을 보기 때문에 동행을 거부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소설 2046에서도 일본인 남자(기무라타쿠야)는 인조인간인 열차 승무원(왕페이)에게 사랑을 느껴 함께 떠나자고 합니다. 그러나 승무원은 아무런 대답이 없죠. 설정상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감정에 대한 반응이 늦어져서 시간이 흐른 뒤에 눈물을 흘리거나 웃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일본인 남자는 대답이 없음에 포기하죠. 시간이 흐른 뒤에 승무원이 좋던 싫던 반응을 보인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늦은 때입니다. 사랑의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할 수 있죠.
영화는 실패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주모운도 루루도 2046객실의 여자도 검은 거미도 2046의 일본 남자도 사랑에 실패합니다. 과거의 아픈 사랑은 누구나 나무에 구멍을 파고 흙으로 메꾸어 봉인을 합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2046열차를 타는 것은 실연의 달콤함을 찾기 위함일까요.
마지막엔 열차가 플랫폼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과 인연은 타이밍입니다. 타이밍이 엇갈리면 시간을 놓쳐 탈 수 없는 기차처럼 놓쳐버리게 되죠. 열차가 멈추지 않고 승강장을 지나가는 것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됩니다.
영화에 사용된 ost도 굉장히 유명합니다. 제목은 따로 없는 것 같고 '2046 메인테마' 입니다. 정말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본 그 음악입니다. 현악기의 날카로운 선율이 영화의 헛헛한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2046>은 리마스터 버전으로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 몰아보기의 마지막 영화였습니다.
사랑은 타이밍이다.아무리 서로 사랑해도 인연은 엇갈릴 수 있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스쳤다면 우리의 인연도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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