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영화.11
[내친김에 왕가위 감독 영화 몰아보기]
제목 : 동사서독(원제 : 東邪西毒, Ashes of Time)
감독 : 왕가위
출연 : 장국영, 임청하, 양조위, 양가휘, 장학우, 유가령, 양채니, 장만옥 등
감상일 : 2024.10.19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을 보았습니다. 정확히는 "동사서독 리덕스"입니다. 보통 감독들이 영화를 완성하면 여러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영화를 수정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사서독 리덕스는 더욱더 드문 경우겠죠. 저는 재편집 하기 전의 영화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떤게 더 나은 영화인지 비교할 수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어렸을 적 읽었던 사조영웅전의 설정을 가져다가 만든 영화인 만큼 굉장이 흥미롭게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책 속의 구양봉이 이리 잘생겼던가? 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영화는 불경의 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움직이는건 깃발도 바람도 아닌 사람의 마음이다." 그리고는 사막의 모래가 파도처럼 일렁이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마음이 저 요동치는 사막의 모래와도 같다는 것지요. 그리고는 영화의 장을 24절기에서 따와서 나누었습니다. 경칩,하지,백로 다시 경칩으로 영화의 장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극중 서독 구양봉은 장국영 배우가 맡았습니다. 동사 황약사는 양가휘 배우입니다. 둘은 친구인데 경칩 즈음이면 황약사는 동쪽에서 구양봉을 찾아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취생몽사'라는 술을 권합니다. 마시면 기억을 잊는 술이라던데 황약사는 쉽게 마셔버리죠. 영화의 뒷부분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황약사는 과거를 잊기 위해 술을 마셨고 복사꽃을 좋아한다는 기억만을 남긴채 살아갑니다. 도화도의 시작이죠. 반면에 구양봉은 명대사를 날리며 먹지 않습니다. "술은 마음을 데우지만 물은 몸을 차갑게 만들지" 왕가위감독은 매번 느끼지만 저런 대사를 어디서 가져오는건지 배우고 싶습니다. 뜨거운 영화와 차가운 책. 영화와 책에대한 제 느낌은 저 대사에서 따온 것이기도 합니다.
임청하 배우는 영화에서 1인 2역을 합니다. 모용언,모용연인데 모용언은 황약사를 죽여달라고 하고 모용연은 자신의 오라버니 모용언을 죽여달라고 합니다. 둘은 같은 인물입니다. 황약사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다른 이를 사랑한 황약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그를 사랑하는 감정의 모용연과 그를 증오하는 감정의 모용언 둘로 인격이 분리된 것입니다. 훗날 그녀는 초절정 고수 독고구패가 됩니다.
양조위는 앵무살수라는 역할입니다. 앵무살수와 황약사는 친구관계인데 앵무살수의 부인(유가령)이 황약사와 바람이 나지만 아직도 부인을 사랑해서 자신의 고향에 복사꽃이 아름답게 핀다고 보러가야 한다고 합니다. 후에 구양봉이 가보지만 그곳엔 복사꽃은 없었고 앵무살수의 부인이 있었죠.
홍칠은 무림을 떠돌다가 구양봉과 잠시 청부업을 합니다. 댓가가 있어야 남을 도와주는 구양봉과는 다르게 선의로 손가락을 잃어가면서 까지 남을 도와주는 홍칠. 홍칠은 그 계기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북쪽으로 아내와 향하죠. 그 모습을 본 구양봉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온 자신을 후회하며 홍칠에게 질추의 김정을 느낍니다.
계란바구니를 든 소녀(양채니)는 구양봉과 앵무살수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하고 홍칠의 손가락을 잃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영화의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구양봉이 사랑하는 사람이자 이제는 그의 형수가 된 여인(장만옥)의 독백장면 입니다. 오기때문에 그의 형과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구양봉을 잊지 못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잡을 수 없고 되돌릴수 없기에 허무합니다. 그 회한을 절절한 독백과 표정으로 보여주는데 짧은 등장만으로 강력한 인상을 남겨줍니다.
영화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회를 담고 있습니다. 무협의 탈을 쓴 씁쓸한, 타버린 재가 된 사랑영화입니다.
<옛날에는 중요한 말이 있으면 꼭 말로 해야만 영원하다고 생각했죠. 돌이켜 생각해보니 말하지 않아도 똑같아요. 모든건 변하니까요. 늘 이겼다고 생각해 왔어요. 어느 날 거울을 보고 깨달았죠. 제가 졌다는 걸요.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사랑하는 사람이 제곁에 없었어요. 다시 시작할 수 있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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